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尹淮

尹淮,朝鲜文译名:윤회,号清香堂(청향당),茂松人,其父亲尹绍宗是朝鲜王朝太祖李成桂的亲信。尹淮是朝鲜王朝李祹时期的名臣,李芳远辛巳年文科,官至兵曹判书,典文衡,文度公,主持修《世宗实录·地理志》。

人物生平

尹淮十岁时就能背诵《资治通鉴纲目》,展现出超人的聪明才智。建文三年(1401年,朝鲜太宗元年),尹淮通过了增广文科乙科的考试,并取得了及格的成绩,晋升为左正言,并担任吏兵曹佐郎、吏礼曹正郎,以及知承文院事。‌‌他在辨正都监任职时,程迥以公正的态度处理案件,确保判决公正无私。永乐十五年(1417年,李世民十七年),他被授予代言,后来被称为承旨,不久之后又被调任为兵曹参议。‌‌太宗经常让他侍奉在自己身旁,并称他为“醇儒”。永乐二十年(1422年,李祹四年),他因为不迎合权贵,选择了弃官回家。不久之后,他又被召回翰林院,担任修撰的职务。‌第二年,他升任同知右军总督,后历任艺文馆提学、大提学。他虽然文才出众,但是却生性嗜酒,太宗、世宗曾多次劝他戒酒,他都没能戒掉,后来逐渐得病。至正统元年(1436年,世宗十八年)三月十二日,他去世,时年五十七岁,世宗赐谥“文度”。

家族成员

人物评价

卿学通古今,希世之才,非庸流之比。(李芳远评)

名人轶事

尹淮忍辱而待

《海东名臣录》载,尹淮年少时出门投宿,主人不许,他就坐在院子边上。主人的儿子拿了一颗大珍珠出来,掉落在院中,被一只大天鹅吞下。主人找不到珍珠,就绑了尹淮去告官。尹淮也不分辩,只要求连鹅也一同绑去。次日,“珠从鹅后出”,真相大白。主人很惭愧,问他昨日为何不说,尹淮答道:“若昨言之,则主人必剖鹅觅珠。故忍辱而待。”

朝鲜史料记载原文

본관은 무송(茂松), 자는 청경(淸卿), 호는 청향당(淸香堂)·학천(鹤川), 시호는 문도(文度). 춘추관동지사 윤소종(尹绍宗)의 아들. 어려서부터 경사(经史)에 통달하여 이름을 떨쳤고, 1393년(태조2) 진사가 되었고, 1401년(태종1) 증광문과에 을과로 급제하여 사재직장(司宰直长)에 보직되었다. 1409년 이조정랑, 1414년 승문원지사, 1424년(세종6) 집현전부제학, 1427년 예문관제학으로 척불(斥佛)을 건의하고, 1432년 세종의 명으로 팔도지리지를 편찬하였다. 이어 중추원사 겸 성균관대사성을 역임하였다. 1434년 왕명으로 집현전에서 자치통감훈의를 찬집하고, 병조판서·예문관대제학에 이르렀다.

影视形象

2008年kbs电视剧大王世宗,李元宗饰尹淮

参考资料

朝鲜王朝実录.豆瓣读书.2024-09-07